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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칠면조(七面鳥)-여상현시집

* 칠면조(七面鳥)-여상현시집

여상현/정음사-147쪽-1947년9월20일간 초판.

정가 : 백삼십원-판매가 : ?.

책상태-표지가 없고, 접혔던 자욱, 뒤에 4장이 물에

젖였던 자욱 있지만, 그 외에 보는데는 이상없음.

당시 백성들의 울분과 희망, 투쟁 등을 그려낸 시인.

   

                                  

 

      <원래 표지 이미지>

칠면조 七面鳥

여상현 시집. 정음사. 1947년. 초판.

 

보리씨를 뿌리며

- 영천에서 어떤 늙은 농부의 고백 여상현

 

서러움 보다는

분에 더욱 못이기면서

다시 또 보리밭을 갈았나이다

무명치마 허리춤에 걷어매고

안해도 메누리도 딸년도

우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이랑 이랑에 보리씨를 뿌리나이다

대판으로 징용갔던 큰자식도 돌아왔고

해병단에 끌려간 둘째놈도 허둥지둥 찾아왔었기에

지난 가을엔 보리단술도 담그려 했나이다

왜인들도 모조리 쫓겨갓기에

해방이네 자유네 들떠들기에

서울서는 독립정부를 세운다는 소문이 끊일새 없기ㅔ

이제야 살길이 터지나부다 했었나이다

삼천포네 울산이에

또 다른 이름도 모를 항구마다

백옥같은 쌀이 밀선으로 나간다는 수소문

장거리에서도 우물가에서도 품아시방에서도

소근닥대는 이야기였소

와이 좀 못막능기요

우리네 조선 농토산이야

언제 쌀밥만 먹고 살았능기요

쌀 팔아 비료 사고

쌀 팔아 메트리 신던 발에 고무신도 신어봤지요

3, 4월 기나긴 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보리고개를

하냥 색거리로 목슴을 이어

한여름 곱삶은 보리밥 아니면

부앙 나 죽는 놈도 부지기수죠

이것도 해방 덕이랍니까

알알이 샅샅이 털어가려는 바람에

동네 방네 고을 고을마다

항재으이 불길이 터지고야 말었소

쌀은 못먹으나 보리로나 주림을 여이려는 것이였소

총소리 산천을 은은히 울려

쇠잔한 목슴들이 피로 사라지는

이 무슨 동족상살의 슬픈 회오리바람잉기요

마침내 큰놈도 작은놈도 부뜰려 갔나이다

우직한 절믄 놈들이라

바른 고장으로 대들은 탓이 아닝기요

허리끈으로 반양식을 삼아온 한평생

이제라 무슨 정승판서를 바라겠소

하양 넓은 들엔

간덩이처럼 붉은 능금이 조랑 조랑

우리네 살림사링에 말성도 많아

다시 또 묵묵히 일이나 하죠

서러움 보다는

분에 더욱 못이기면서

다시 정성껏 죄많은 보리씨를 뿌리나이다

북풍은 고개넘어 쪼그리고 있고

5, 6월 굶주림 설레는 마음에

안해도 메누리도 딸년도

우리 앞서거니 뒷서거니

보리씨 뿌리며 붇 돋으며

하냥 땅만 땅만 굽어 보나이다

<신고서점에서 퍼옴>